<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두 여자의 사랑이야기다. 다만 정치적이지 않으며, 때문에 퀴어 영화라는 장르에 종속되려 하지 않는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 아델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아가는 동안 큰 혼란을 겪지도 않으며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시선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스토리는 두 주인공 중 한 명을 남자로 설정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진부한 로맨스에 가까워진다. 영화는 동성애를 통해 원초적인 사랑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사랑을 하는 동안 겪는 모든 감정을 꺼낸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가장 원초적인 멜로 영화다.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첫 번째 특징이다. 먼저 아델이 스쳐지나간 엠마를 떠올리며 자위를 한 장면은 사랑에서 에로스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긴 정사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 엠마를 찾게 된 이유도, 엠마를 그리워한 이유 중 일부도 육체적인 욕망에 있다. 친구들은 학교 선배와 관계를 가졌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본인이 선배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둘의 관계를 통해 깨닫는다.
사랑은 상대를 종속시키거나, 상대에게 종속당하게 만든다. 아델은 선배에게 미적지근하다. 그러나 그는 아델에게 종속된다. 그렇기에 그는 아델이 좋아하는 책을 완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유롭게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아델과 누군가 완벽하게 해석해주길 바라는 선배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서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델과 엠마 또한 서로 다르다. 아델은 파란 머리 엠마로 인해 성장한다, 초반부는 아델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다. 현실적이었던 아델은 엠마의 자유주의적인 성향에 매료된다. 파란색은 자유다. 아델은 엠마를 통해 새로운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둘이 동거를 시작하고 엠마의 머리색이 금발로 변할 때 차이점은 단점이 된다. 아델은 엠마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의 만남도 사라진다. 엠마와 달리 부모님께 연애중이라는 사실도 말하지 못한다. 결국 기존에 있었던 본인의 지인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인물은 엠마 뿐이다. 하지만 엠마는 그렇지 않기에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
아델은 엠마에게 종속된다. 엠마는 아델의 현실적인 성향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델은 미술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엠마가 친구와 실레와 클림트를 논할 때 끼지 못한다. 서로는 닮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닮을 수 없다. 억지로 닮아가려 하는 과정은 스트레스를 낳을 뿐이다.
엠마는 아델에게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엠마는 아델을 자신에게 맞추려 하며 아델은 자신이 맞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영향력은 일방적이다. 파티에서, 아델과 엠마는 뒤에서 비춰지는 흑백영화 속 상황과 같았다.
균형이 무너진 사랑은 오래갈 수 없었다. 엠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닌, 외로워서 한 외도로 둘은 헤어진다.
결말부에 다다르고 아델은 엠마의 전시회에 초대받는다. 아델은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엠마를 만나러 간다. 엠마는 가족을 꾸린 상태였고 아델이 낄 자리는 없다. 파란색이 된 아델은 결국 엠마와의 종속적인 관계를 끊어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걸어간다. 엠마가 아니면 살 수 없던 시간이 끝난 것이다.
영화 중 ‘존재는 본질에 우선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이 나온다.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부모님과 동성애를 혐오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델은 억지로 끼워 맞춘 퍼즐이었다. 문학을 자유롭게 해석하길 좋아하며 글쓰기가 취미인 아델의 본질 또한 파란색이다. 다만 친구들, 부모님 등 보수적인 주변에 의해 자신을 감추고 눌러야 했다. 그런 아델의 삶에서 엠마는 결말부이길 바란 터닝포인트였다.
교사가 안티고네에 대한 수업을 할 때, 비극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본질에 가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델과 엠마의 연애를 한 줄로 요약한 것과 같다. 열정적인 시기가 지나고, 엠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델은 남자와의 외도로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아델은 파란색을 되찾았다.
글을 시작하며 말한 것처럼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사랑의 처음과 끝을 비췄다.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날것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영화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프랑스 국기의 색인 파랑, 햐앙, 빨강의 뜻 자유, 평등, 박애의 모습 또한 잘 보여준다. 60년대 프랑스 영화의 경향인 ‘누벨바그’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은 ‘새로운 물결’이란 뜻의 누벨바그가 다시 한 번 활약하기 좋은 시기다. 현재, 자유를 위한 투쟁, 존재에 대한 관심은 60년대 못지않게 뜨겁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그 선봉장을 서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정사 장면이 지나치리만큼 길고 많은 점, 혹은 남성 감독의 판타지가 개입되었다는 설 등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엄청난 수의 테이크와 끊임없는 클로즈업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그려내려 했던 감독의 의도는 성공했다. 솜털이 보일만큼 가까운 카메라로 찍은 감정은 세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같은 촬영기법이 아니었더라도, 혹은 정사 장면을 그렇게 길게 찍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청난 열연을 해준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와 레아 세두에게 격찬을 보낸다.
글 김기범
편집 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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