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1994년, 서울, 초인종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네 번의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이후 문고리를 세게 잡아당기며 엄마를 부르고, 한 번 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지 걱정될 때쯤에 은희는 자신이 층을 잘못 찾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902호에서 1002호, 다시 한번 초인종이 울린다. 이어지는 정적은 보는 사람을 긴장케 한다. 다행히 문이 열렸지만 은희의 표정은 굳어있다. 또다시 문은 굳게 닫힌다.
영화는 가정의 불쾌함을 담고 있다. 은희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소희를 향한 아빠의 폭언을 듣는다. 다른 날, 의미 없이 은희를 부르는 대훈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무 저항 없이 대훈에게 맞는다. 대훈이 때렸다는 말에 싸우지 말라는 대답을 듣는다. 오빠와 여동생에게는 보편적인 일. 언니는 아무 말 없이 은희를 바라본다. 어쩌면 은희의 집에서, 여자에겐 보편적인 일.
다른 날, 소희를 향한 아빠의 폭언을 다시 듣는다. 아빠의 폭언은 엄마를 향해서도 전해진다. 이윽고 둘은 몸싸움을 시작한다. 피가 흐르고, 유리 조각이 화면을 채운다. 다음 날,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둘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웃는다. 어쩌면 1994년, 여자에겐 보편적인 일.
불쾌하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것. 유쾌하다는 건 즐겁고 상쾌한 것. 어느 곳보다 즐겁고 편안해야 할 가정에서 우리는 불쾌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불쾌함은 우리만이 느낀다. 은희를 포함한 모든 가족에게는 아주, 보편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은희는 집안의 작은 일에 행복을 느낀다. 은희의 수술이 결정되고 아빠가 우는 일, 엄마가 반찬을 챙겨주는 일. 그런 작은 일들에 행복을 느끼고, 그제야 겨우 웃는다. 우리에게 보편적인 일이 은희에겐 행복이 된다. 우리에게 불쾌한 일이 은희에겐 보편적인 일상이 된다.
영화는 학교의 불쾌함을 담고 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라며 무시한다. 학생들은 은희를 무시한다. 몸을 엎드려 올라가는 블라우스와 자국 남은 팔, 그 불편함을 느끼며 은희는 불쾌함을 무시한다. 다른 날, 선생님은 날라리 색출 작업을 시행한다. 담배 피우고, 연애하고, 노래방 다니는 학생들을 색출한다.
은희는 그런 학생이다. 선생님은 날라리를 색출하고, 학생들을 서울대에 보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은희가 담배 피우고, 연애하고, 노래방 다니는 일 외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생은 모두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학생은 날라리가 된다. 여대생이 아닌 날라리는 무시 받는다.
그리고 영화는 관계의 불쾌함을 담고 있다.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 은희는 오빠에게 자주 맞는다. 지숙은 오빠에게 맞아 멍든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 맞은 사실을 누구에게 알리기는커녕 가리고 다닌다. 반항하면 더 맞기 때문에 가만히 있다. 그저 끝나기를 기다린다. 은희와 지숙에게는 아주, 보편적인 일이다. 엄마는 몇 년이 지난 삼촌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모든 여동생에게 보편적인 일.
아빠와 딸의 관계. 은희와 지숙은 문구점에서 도둑질하다 걸렸다. 아빠는 은희를 그냥 경찰서에 넘기라고 말한다. 방임, 돌보거나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아동학대 유형. 아빠는 은희에게 의식주를 모두 제공한다. 학교와 학원을 보내며 교육도 제공한다.
하지만 문구점 주인은 “아빠 맞아?”라고 묻는다.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부모는 자녀의 육체뿐 아니라 정서도 함께 돌보아야 한다. 자녀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은희의 아빠는, 아빠가 맞을까?
여자친구와 남자친구의 관계. 은희는 지완이 다른 여자친구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다. 그렇게 둘은 헤어진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다시 사랑한다. 무슨 이유로 헤어졌었는지, 왜 다시 사랑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지완의 엄마와 마주친 뒤, 아무 말 없이 다시 둘은 헤어진다. 아무 말 없이 헤어지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헤어진다.
닿지 않는 관계. 은희는 엄마를 본다. 아마도 본 것 같았다. 엄마를 향해 소리 지른다. 다섯 번이나 불러보지만 닿지 않는다. 은희는 영지를 만나지 못한다. 영지의 소포는 닿았지만, 은희의 편지는 닿지 못한다. ‘방학이 끝나면’ 다 이야기해 준다는 영지의 약속, 그 이야기도 끝내 닿지 못한다.
영화는 불쾌함을 담고 있다. 은희는 느끼지 못하는, 우리만이 느끼는 불쾌함. 영화는 은희가 느끼지 못하는 불쾌함을 우리에게 전한다.
더는 불쾌함을 느끼지 못하는 은희가 없도록, 우리에게 전한다. 은희에게는 영지가 있었지만, 우리에겐 영지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쾌함을 느끼는 은희가 되어야 한다. 불쾌함을 모르는 은희에게 영지가 되어주어야 한다.
글 조예인
편집 노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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