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영학 책에서 인용된 <화난 원숭이 실험>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안에 네 마리의 원숭이가 있다. 한가운데에 장대가 있으며 꼭대기에는 바나나가 있다. 배고픈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먹기 위해 장대를 올라가면 물을 세게 뿌려 떨어지게 만든다.
원숭이들은 계속되는 시도 끝에 바나나를 따 먹는 것을 단념한다.
그리고 새 원숭이가 방에 들어온다. 새로운 원숭이는 바나나를 먹기 위해 장대를 오르려 하지만 다른 원숭이들이 말리며 끌어내린다. 이후 새로운 원숭이가 들어올 때 이 과정이 반복된다. 나중에 처음 4마리의 원숭이를 우리에서 내보낸 이후에는 물세례를 맞지 않은 원숭이만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바나나를 먹지 않고 간혹 먹으러 올라가는 원숭이를 말리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나의 ‘관습’이 생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많은 관습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는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른들께 술을 받을 때 한 손은 잔을 한 손은 팔뚝에 위치한다. 혹은 가슴 언저리에 손을 위치한 체 술을 받는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의 “예의”이다. 왜 이런 문화가 생겼을까?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한복을 입었고 팔의 소매가 매우 길었다. 술잔을 받으려면 소맷자락이 길게 늘어져 음식에 닿기 때문에 그것을 잡고 손을 뻗어 술을 받은 것이다. 옷자락이 음식에 닿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예의라는 이름 아래 관습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옷깃이 짧은 옷이 일상복임에도 여전히 술잔을 주고받을 때 가상의 옷자락을 잡는다.
명절의 경우에도 전통적으로 제사는 남자와 여자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의식이었다. 집안의 맏아들은 시신을 닦아 수의를 입히는 염습을 진행했고 맏며느리는 집안의 장과 술을 통해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염습 등의 제사를 진행하는 과정은 외부에서 볼 수 없는 의식이었고 음식을 준비하는 보이는 과정이기에 어느새 “제사의 음식은 여자가 한다”라는 관습이 생긴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대부분 장례를 집이 아닌 장례식장에서 진행하며 전문가가 염습한다.
그러나 여전히 매년 명절 스트레스 원인이 제사음식이다. 의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데 왜 보이는 현상은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일까?
우리는 수많은 "당연함"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당연한” 것들을 그저 받아들여야 할까?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질문을 던지면 “원래 그랬다”라고 하는 대답 들은 저 원숭이 실험에서의 원숭이들과 다르게 무엇일까?
나는 청년들이 이 당연함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1년의 대한민국 청년들은 매우 힘들다.
온라인 포털에 청년 관련 기사는 대부분 코로나 19 장기화로 인한 실업률증가이며 "N포 세대"로 정의된다. 청춘은 아프고 힘들다. 그렇게 청년들은 더 무기력해져 간다. 그럼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사회에서 요구하는 당연함에 질문을 던지고 주체적으로 바꿔 나아가야 한다. 심지어 현재 대전광역시는 청년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 목소리를 내고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 방법은 정책적으로도 보장되어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들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혁신”의 상징이다. 각 시대에서 “당연함”을 깨고 새로움을 만들어낸 집합체가 박물관이다. 자연의 돌을 깨서 날카롭게 사용하였다. 그저 당연한 진흙을 빚어 그릇으로 사용하여 저장의 행위를 하고 정착을 하게 되었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왜 사과는 떨어질까?”라는 생각을 하여 인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역사를 바꿨다.
우리 청년들은 본질은 잊은 체 현상만 남아있는 관습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바꾸어 나가며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은 힘들다”라는 생각의 관습도 끊어내고 주체적으로 바꾸어 나아가야 한다.
결국 앞으로 이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더 오래 살아갈 주체는 "청년"이다.
글ㅣ황주상 대전광역시 청춘 너나들이 센터장
편집ㅣ김민우, 노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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