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부분의 20대 학생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지난 2월. EBS 다큐프라임은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방송은 1부부터 6부까지 각각 다른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5부에 ‘말문을 터라’였다.
“말문을 터라”
첫 시작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이 끝난 후, 한국 기자들에게만 질문 할 기회를 주었다. 이때, 우리의 보통의 상식으로는 '그렇게 대단한 자리'에 가 있다면 그 기회에 무언가라도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있던 한국 기자들은 단 한명도 손을 들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을 때 결국, 기다리고 있던 중국 기자가 한국 기자 대신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을 해도 되겠냐고 요청을 하게 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공정하게 따지면, 나는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할 기회를 주고 있다.”라고 하며 한국 기자들에게 다시 한 번 질문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자들은 서로만 어색하게 쳐다볼 뿐 아무도 손을 들지는 않는다.
도대체 왜 한국의 기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대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방송에서는 한국의 대학생들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앞서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곳은 언제부턴가 질문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이야기이다.’라는 멘트로 시작 하였다.
‘언제부턴가 질문을 잃어버린 우리들’
한국의 대학생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을까?
한국의 대학생들은 그 어떤 수업에도 교수님만 묵묵하게 수업을 진행할 뿐,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교수가 수업을 끝내려고 할 때까지 다들 ‘이 수업 언제 끝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적막하기 짝이 없었던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왜 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학생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제가 질문하면 사람들한테 욕먹을 것 같아서요’
‘제가 질문하면 교수님도 별로 좋아하시지 않아 하실 걸요?’
‘제가 질문하면 잘못된 것을 물어볼까봐 부끄러워요.’
라는 대답이었다.
왜 한국의 학생들은 질문을 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가지고 있을까?
방송에서는 한국과 다른 나라 학생들을 비교하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세계의 많은 대학생들을 본 한국 대학생들은 자신들과 매우 다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수업하는 방식부터 한국과 달랐다. 교수님이 앞에서 아주 잠깐 동안 설명을 하면 학생들이 그 설명에, 혹은 교수가 말한 것에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생각 한 것을 무조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그래서 수업 내내 교수도, 학생들도 눈빛이 번쩍번쩍 빛나며 분위기도 굉장히 열정적이고 좋았다.
수업이 끝난 후, 한 학생에게 다가가 왜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냐고 물었을 때, 그 학생은 “질문을 해야 내가 아는 것이 틀렸는지 아닌지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는 달리 다른 나라의 대학생들은 질문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왜, 무엇이 다르기에 한국의 대학생들은 질문을 하지 않을까?
방송은 대학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 되었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모르는 것을 무조건 다 질문하였다. 질문의 내용을 들어보고 있으면 학생들은 너무너무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도 마음에 남기지 않고 다 내뱉어가며 솔직한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내었다.
반면,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은 반응이 대학생과 비슷하였다.
똑같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왜 성향이 달라지는 것일까?
위 사진은, 방송에서 제작진들이 중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 무엇인지를 써보라고 하여서 아이들이 써낸 종이이다.
‘조용히 해’
‘집중 좀 해라’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선생님에게 들어보았을 법한 소리였다. 물론 이 종이에서 ‘조용히 하라’는 것은 단순히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은 채 웃고 떠들며 다른 얘기를 했을 때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쪽지들은 한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왜 질문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그랬다,
한국의 학생들은 궁금한 것이 없던 사람들도, 질문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나 객관적이고 정해진 틀 안에서만 답을 찾아야 하는 각종 시험들로 인하여 주입식 교육에 적응해버렸고 그렇기에 학생들은 궁금한 것도, 질문하는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요즘은 논술이니 작문이니 하는 새로운 공부법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정말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컸다.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상, 다른 나라들처럼 여유롭게 앉아서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하는 정서를 누릴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시대는 달라졌고 그에 따라 많이 변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면이 더 많았다. 가장 창의력이 뛰어나고 모든 것에 가능성이 많은 나이에 특별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다 ‘보통의 학생’이 되고 만다.
“말문을 터라” 언뜻 보면 그냥 질문을 잘하지 않는 한국의 학생들을 가리켜 조언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 방송을 본 사람들은 한국의 교육법과 그리고 자신의 학창시절의 모습을 다들 떠올렸을 것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학생들. 특히 꿈을 펼쳐가고 획기적이고 특별한 것을 창출해 낼 수 있는 20대 청년들에게 확실한 말문을 틀 수 있는 새로운 자극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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