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전설>은 훌륭한 음악 영화이기도 하지만 1900년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역사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인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음악 감독 앤니오 모레꼬레가 만든 영화 속 OST 중 하나의 곡명이다. 원제는 <The legend of 1900>이다. 필자는 이 두 제목 중 어느 것이 원제가 되어도 작품에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첫번째는 주인공 나인틴헌드레드의 생애를 보여주는 전기 영화의 성격이다. 나인틴이 태어난 시대는 1900년도로 아메리카 드림으로 불리는, 자본주의 시대의 상징으로 불리던 20세기다. 영화의 오프닝 또한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들인 배 위의 자칭 ‘드리머’들의 환호와 함께 시작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빨리 외치는 ‘아메리카!’라는 단어의 명암 또한 공허한 환호와 함께 서서히 드러난다. 신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인틴은 대가가 되어버린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 생산과 최대 효율인데 이기적인 부모들은 자신의 혈육조차 아깝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나인틴을 거둬 들이는 건 배에서 일하는 흑인 막노동자 데니 부드먼이다. 당시 가장 소외당한 계층이 세상에서 소외당하지 않으려는 ‘드리머’의 버려진 아이를 키운다. 그렇게 나인틴은 당시 ‘일반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다르게 교육받는다.
데니가 했던 명칭에 대한 거짓말의 목적은 어린 나이의 나인틴 본인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데니의 거짓말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나인틴이 커가며 세상의 수많은 개념들을 배워갈 때 자신만의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해준다. 배 밖의 세계에서 명명된 재즈의 개념이 나인틴이 추구하는 재즈와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나인틴이 배 밖의 세상을 두려워했던 것은 무한한 세상으로의 막연한 두려움뿐만이 아니다. 더 두려운 것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하고 가치를 따지는 데에 혈안이 된 무한해지는 사람들이다. 나인틴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매기는 자신의 가치가 아닌 본인이 느끼기에 나인틴 자신을 순간적으로 이끌게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그 순수한 감정이 담긴 음악은 오롯이 순간적이여야 한다. 녹음된 음반의 운명은 나인틴이 고아원을 어른들을 가두는 곳이라고 배웠을 때부터,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인지하도록 배울 때부터 폐기되도록 결정난 것이다.
이때 이 음반의 죽음과 동일시되는 것 역시 나인틴의 죽음이다. 나인틴은 왜 배에서 죽음을 맞이한 걸까? 나인틴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물질주의의 세상에서 덧입혀지기 않기를 바랬다. 세상이 강압적으로 정해 놓은 가치에 물들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버리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전례는 바로 자신의 부모였다. 때문에 나인틴의 부모가 나인틴을 버리기 전 그에게 어떠한 이름을 붙였던 나인틴의 이름은 그것이 아니다. 대신 1900이라는 출생년도가 그의 이름이 되어 시대의 아픔이 나인틴에게 고스란히 담긴다. 그렇게 나인틴은 1900년, 즉 20세기에 일어난 비극 자체를 의미하는 인물이 된다.
나인틴은 알고 있던 것이다. 자신의 음반이 세상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가치가 떨어진다면 자신 또한 육지에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을. 그러기에 그는 자신에게 유한함을 바탕으로 무한함을 선사한 피아노가 있는 배에서, 버려진 예술가를 받아준 배를 떠날 수 없다. 감독이 나인틴의 결말을 굳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인물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로 끝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인틴이 세상에 나가서 남들과 똑같은 경쟁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나인틴 또한 자신의 부모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인틴은 자본주의의 방식이 유혹하는 반복되는 비극을 겪기를 거부한 채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본인이 삶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갈수록 무한해지는 자본주의를 경계함과 그 두려움에 대한 염려로 영화는 나인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영화의 어두워 보이는 메시지와는 별개로 이 영화의 결말은 상당히 희망차다. 여기서 이 영화의 두번째 성격인 음악 영화로서의 성격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과거 배에서 나인틴과 같이 연주를 했던 맥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윗선에 위치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인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악기 가게 주인, 배 폭파 관리인 등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인틴이 어떠한 인물인지 ‘피아니스트의 전설’ 이야기에 대해서 들려준다. 놀랍게도 돈 한푼 없어 보이는 퇴물 악사의 말을 그들이 들어주는 이유는 맥스가 들려주는 나인틴의 이야기가 그들을 감응시키기 때문이다. 이때 회상 속 나인틴의 속세를 벗어난 듯한 연주곡들은 이야기의 서정성을 극대화시킨다.
동시에 이 영화가 훌륭한 음악 영화인 이유는 앤니오 모레꼬레의 곡들이 가지는 환상적인 서정성, 서사성 뿐만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인틴의 이야기를 들은 악기 가게의 주인이 맥스에게 다시 트럼펫을 쥐어 준 이유도 이와 같다. 나인틴의 이야기가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돈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악기 사장은 이제 맥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전송한다. 음악을 다시 연주하며 바다 뿐만이 아닌 육지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만들기를 기대하면서. 상점을 나와 거리로 나서는 맥스의 모습을 비추는 햇빛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맥스는 놓쳤었던 트럼펫을 놓지 않고 연주를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야기’가 어떤 과정의 결말과 경제성보다 더 앞서 나가 '이야기' 자체가 육지의 모든 사람들을 감응시키고 전설이 전설로만 남지 않을 때까지.
글 파도일(견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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