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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운의 동전은 누구에게 주어질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문화예술

by 밍기적아이(MGI) 2020. 3. 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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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 클로버를 밟아 다니며 망치곤 했다. 행운을 의미하는 네 잎 클로버와 행복을 의미하는 세 잎 클로버. 두 클로버의 의미를 생각하며, 요즈음 우리는 행운을 위해 행복을 망치지 말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눈앞의 행복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행운을 바란다. 노력해서 얻어내는 행복이 아니라, 우연한 행운으로 얻어지는 행복을 우리는 더 좋아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포스터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우리 삶에서의 운, 행운과 불운을 보여준다.

 “There wasnt any passion to it. The crime you see now, its hard to even take its measure.

 (격정 같은 건 없다. 요즘 범죄는, 딱히 동기도 없다.)

시거는 모스가 가져간 돈을 찾으며 많은 사람을 죽인다. 시거를 만나 죽은 사람과, 시거를 만났음에도 죽지 않은 사람,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답은 없다. 시거가 사람을 죽인 이유도, 살려 둔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무 이유 없이 시거에게 죽임을 당한다. 우리는 생각한다. 죽은 사람은 불운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중에서

시거를 만났음에도 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동전 내기에서 이긴 사람,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 시거는 동전 던지기에 사람의 목숨을 건다. 이기면 뭘 얻냐는 질문에 “뭐든지”라고 답한다.

하지만 내기에서 이긴 자가 얻은 것은 ‘행운의 동전’ 뿐이다. 그는 ‘행운의 동전’을 보며 오늘을 잊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그보다 값진, 언제든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다.

뭐든지 준다는 말에 바로 내기를 시작한 상점 주인과 달리, 칼라 진은 끝까지 내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시거는 결국 그를 죽이고, 신발에 피가 묻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그가 동전 내기를 받아들였다면 상점 주인처럼 살 수 있었을까? 혹은 동전 내기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은 걸까?

어느 쪽이 사실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가 죽기 전 동전 던지기 제안을 받은 것이 행운인지 불운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중에서

동전 내기에서 이겨 죽지 않은 사람은 행운인 걸까?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가 얻은 것은 작은 동전 하나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전의 앞면을 본 순간, 그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살인자와 마주친 것만으로도 그것은 불운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인자를 마주치고도 살아남은 행운에 더 집중하게 된다.

모스에겐 갑자기 거액의 돈, 행운이 찾아온다. 그는 그 행운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총상을 당하고 쫓기면서까지 그 행운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목숨을 빼앗기는 불운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동안 시거는 죽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행운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파란불이 켜진 조용한 도로에서 돌연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불운한 사람인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중에서

행운과 불운은 누구에게 찾아오고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운을 피하고 행복을 얻기 위해 행운을 좇는다. 운은 주관적이고, 또 가변적이다. 자신이 불운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행운이 찾아왔다고 믿게 된다. 글을 읽으며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이 운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없다. 우리 삶의 운 또한 마찬가지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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