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앞에는 200만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이 놓여있다. 그 가방을 가져갈 순 있지만, 당신과 가족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이 순간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속물적이게 보이지 않으냐는 생각에 대답이 조심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돈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을 테니 안심해라. 르웰린 모스도 그러했으니. 200만 달러를 선택한 당신은 보편적인 편에 속한다. 돈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세상이기에.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1980년대 미국 서부에서 일어난 마약밀매를 소재로 한다. 영화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시대였던 19세기 자본주의에 휘둘리는 모습과 미국 우월주의를 보여준다.
르웰린 모스는 영양을 사냥하던 중 예상치 못한 사건에 끼어들게 된다. 과거 군인이었던 그는 빠른 눈치로 단박에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한다. 속전속결로 돈 가방만 챙긴다.
그는 진작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계속해서 지키려고 한다. 그가 사는 곳은 텍사스에 있는 한 트레일러이다. 부족함은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부유해 보이지도 않는다.
또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는데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살인마에게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미국 서부의 상징이었던 카우보이 복장을 끝까지 고집한다. 그런 그에게 텍사스 한가운데 떨어진 200달러의 가방은 우월한 미국인이 되는 지름길이었다.
안톤 시거는 중간에 돈 가방을 가져간 모스를 쫓는다. 그 과정에서 거슬리는 사람들은 거침없이 죽인다. 도살할 때 쓰이는 총으로 살인을 하는 시거에게 자신의 길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가축과 같은 존재이다. 오히려 가축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도살된 가축은 돈이 되니까.
시거는 예상치 못한 살인의 순간에서는 동전 던지기를 통해 살인을 결정한다. 동전은 돈이며, 돈으로 살인을 결정하는 모습은 시거가 자본주의 위의 지배자처럼 느껴지게 한다.
에드 톰 벨은 보완관이다. 과거엔 보완관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가득했다고 말한다. 무의미한 범죄에 장단 맞추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벨은 시거를 잡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한 발짝 늦게 시거의 발자국만 쫓을 뿐이다.
영화에선 베트남 전쟁이 여러 번 언급된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미국의 패배는 그들에게 굴욕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보완관 벨은 자신의 아버지 시대의 미국의 황금기를 생각한다. 과거에 얽매여있는 그는 항상 느리고 무기력하다.
I’m older now than he ever was by 20 years.
So, in a sense, he’s the younger man.
Anyway, the first one I don’t remember too well,
but it was about meeting him in town
somewheres and he give me some money
I think I lost it.
내가 스무 살이나 더 먹었더군
내 기억엔 나보다 젊으시니까
처음 건 가물가물한데
마을에서 만났더니 돈을 주셨어.
근데 잃어버렸지
The second one, it was like we was both back in older times.
…
And he was fixing to make a fire
somewhere out there in all that dark and all that cold.
And I knew that whenever I got there, he’d there.
Then I woke up.
두 번째는 옛날로 돌아간 거야.
…
어둡고 추운 곳에 불을 밝히고 계실 거란 걸 알았어. 내가 도착하면 날 맞으시려고.
그러다 깼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벨은 자신의 꿈 얘기를 한다.
그는 꿈에서 아버지가 주신 돈을 잃어버린다. 돈은 자본주의 그 자체를 말한다. 그는 첫 번째 꿈에서 돈이 무의미함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꿈에서 다시 아버지를 따른다. 아버지, 즉 기성세대들이 안내하는 길이 모두 맞다고 의심 없이 믿는다.
그는 자신의 느리고 무기력함으로 인해 안톤시거를 놓쳤음에도 깨달은 것이 없다. 그저 그렇게 있다. 오는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그것에 맞게 변화해나가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나도 벨은 안톤시거를 못 잡을 것이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기다리면 공포감에 살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빠르게 돌아가고 변화하고 있다. 이 세상은 뒤처진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멈춰 있는 이들을 위한 세상은 없다.
글 김한결
편집 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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