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슈(HASHU)를 시작하면서.
분명 초등학교때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손재주도 적당히 있었다. 라디오에서 가끔 들려오는 고 노회찬 의원이 내 이름처럼 들려 정치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삶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내가 글 쓰는 것에 왜 빠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쓰고 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5학년 소설의 매력을 느끼고, 중학교때 잠깐 그림으로 외도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평론 같은걸 쓰겠다고 생각하다니. 아마 그때부터 망해가는 장르만 쫓아가는 취미를 길렀나 보다.
대학교도 문예창작과라는 00년대 초반 인기 좋았던 학과를 갔다. 물론 내가 진학했던 때는 10년대였으므로 인기는커녕 수업의 질도 좋지 않았다. 스스로 공부해야 했으며, 스스로 글을 연마해야 했다. 그래도 학생들과 평론을 쓰겠다고 토론 동아리도 이끌고, 영화평론 동아리도 만들었지만 글은커녕 잡담만 떨었고, 알맹이는 없었다.
내가 하는 짓도 알맹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혼자쓰고 있던 음악평론 역시 시대의 흐름과 역행되는 방향이었다. 이후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일개 평론가가 한 아티스트 팬들보다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시간도 없고, 다양한 가수를 찾아야 하는데 깊게 팔 시간이 없는 것이다. 억울하지만 그 팬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좆문가가 된다.
좆문가,
굉장히 재미난 단어이다. 비속어 좆같은 새끼의 '좆'과 전문가의 '문가'가 합쳐진 신조어. 인터넷의 발전은 모든 사람이 아는 척할 수 있는 가짜 지식인과 개소리를 짖걸이는 좆문가라는 신분을 만들어냈다. 이 좆문가라는 칭호는 이상하게도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기자들과 팬덤이 형성된 연예기자들에게 수여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좆문가 소리를 피할 수 있는 어렵고, 지엽적인 글로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양산한 시점이기도 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읽도록 어그로를 끄는 좆문가 글이 결과적으로 평론가들의 타협 아닐까?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좆문가가 될 것이 아니라면 평론가는 정보전달자라는 역할만 남았다. 남들이 모르는 가수를 찾고 알려줘야 한다. 난 '그거라도 해야지'하고 망한 장르를 포기하지 못했다.
미련이자 미련(未練)이다.
같은 시기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과 친분이 생겼고 '시(詩)'라는 장르를 접하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시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 장르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런 사실보다는 '시'의 문체에 매력을 느꼈고, 배워놓으면 문장을 잘쓸 것 같은 환상에 빠진 것이다. 시를 배우기 위해 산 시집만 300권, 쓴 시만 1,000편이 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장르라는 점이었다. 시집은 대부분 시를 쓰는 사람과 시인만 사는 극한의 내수경제였다. 차라리 '평론이 나은 수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현자타임을 느꼈고 본래 하던 비평이나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 사이 취업률과 상관없는 이 학과는 통폐합되었다. 국문과와 문창과는 국어국문(창작)학과라는 의미 없는 믹스견을 만들어냈다. 문창관련 들을 수업은 더 줄어들었고, 국문과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중세국어와 국문법, 한자를 익히게 되었다) 이제 정말 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기왕 블로그에 생각을 기반한 개소리를 짖걸이는 것보다는 새로운 언론에 내 소리를 남기고 싶었다. 하슈의 가짜(FAKE) 뉴스의 '가짜'가 그 어떤 진짜보다 가치 있기를 바라며, 가짜의 탈을 쓴 진짜가 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오늘도 새로운 앨범을 들으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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