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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대한민국에서 백수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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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학매거진 영글 2019. 9. 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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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안에 있는 눈송이 같았다. 곧 인생이라는 터널 속에 까맣게 물들어갈 수순만 남은. 내 일 년여 간의 백수생활이 그러했다.나는 눈송이 같았다. 깨끗하고 순수했다. 무지에서 비롯된 순수였다. 이제는 흔하디흔한 글자가 되어버린 청년실업이라는 네 글자가 막 말문을 트려는 아이처럼 매스컴에 보도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대학 새내기였다.캠퍼스는 푸르렀고 내 인생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서울 중위권 대학의 학생이었으며 나쁘지 않은 입시결과에 만족했다. 그리고 좋은 기분처럼 내 인생에 대해 걱정하진 않았다.

1. 그것이 문제였다. 무지의 순수.
그 시절 슬슬 수면위로 떠오르던 재앙의 진운이 있었다. 88만원 세대, 이제는 본인의 이름처럼 자연스럽게 순응하게 되는 그 단어 말이다. 그 때 우리학교 교수는 88만원 세대에 대해 논평하는 과제를 내주었다. 나는 말했지. ‘그 단어의 정의는 너무나 가혹하며 사회적으로 대비하여 그런 극단적인 세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교수는 그러니?’말했다. 그게 전부였다내가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선배들의 이력을 참고해 취직에 필요한 자격증은 다 구비했었고 학점도 나쁘지 않았으며 수상경력도 있었다. 그래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대수롭지 않게 취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졸업이라는 문이 닫히고 난 뒤 뒤돌아봤을 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소름처럼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나와 같은 졸업생, 아니 이제 취업준비생으로 불려야 하는 그들을.

2. 나는 생존경쟁에서 밀렸다.
그 힘에 밀려 길고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것이 긴 취업준비의 시작이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말은 사실상 졸업 후 육 개월 쯤이 지나자 나를 백수로 보기 시작한 주위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방어체계로 사용됐다. 그렇게 나는 점점 터널 속 먼지에 때 묻기 시작했다. 내 생애 그리 짙고 검은 것은 처음이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가래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그것, 불안이었다서류합격, 서류합격, 서류합격. 터널은 가끔 합격이라는 밝은 햇빛으로 끝을 보여주는 듯 했으나 가까이 가보면 그것은 터널 속 조명이었다. 조건부 합격. 빛을 닮아 있으나 빛이 아닌 조명. 나는 매번 면접에서 미끄러졌다. 그럴수록 불안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의 가래처럼 더욱 악화되어 지독하게 내게 달라붙었다. 조명은 더 먼 암흑으로 가기위한 발판이었다. 아예 어둠속에 취해 있으면 어디인지 또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몰랐을 것을. 더 무서웠던 것은 서류 합격이라는 짧은 빛을 한 번 본 뒤로 더욱 어두워 보이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이었다반년이 지났고 나는 여전했다. 사회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점점 회의가 느껴지는 날이 오갔다. 눈물로 지새우는 날이 잦았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 지쳤고 희망을 가지는 것은 두렵기까지 했다. 희망은 잠시 스친 빛일 뿐 그 역시 더 큰 어둠으로 가는 여정일 뿐이었다.

3.
 취준생에게 감정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눈물로는 변하는 것이 없었고 웃음은 허망했다. 다행히도 부모님과 친구들 모두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힘낼 수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로 지새던 밤 나는 생각했다. 과연 나는 울 자격이 있을까자격, 내가 참으로 많이 되뇐 단어였다. 내가 울 자격이 있을까, 취직할만한 자격이 있을까, 밥 먹을 자격이 있을까, 쉴 자격은? 아니 살 자격은? 난 잘못한 것이 너무나 많은 죄인이었다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나의 미성숙한 준비와 마음가짐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저 사회 메뉴얼에 맞게 잘 살아온 대가가 너무나 컸다. 좋은 대학에만 가면 좋은 직장이 있을 거라고 말했던 것은 누구였나,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이제는 눈이 너무 높으니 눈을 낮추라고 성화를 내는 것은 또 누구인가. 나는 문득, ‘발전이 없는 사회에서는 사회의 잘못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고 말한 유럽친구의 말이 생각났다그러나 나는 죽을 용기는 없었기에 감정을 포기했다. 포기라는 말이 정말 맞다. 더 이상 그 무엇에도 요동치기 싫었다. 나는 이성적인 인간이 되기로 했다초등, 중등, 고등, 대학생 똑같은 머리로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사회 제도 똑같이 아래 생활하던 아이들에게 뭐 그리 색다른,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원하는 걸까. 정말로 그런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거짓말을 하라고 종용하는 듯한 자소서의 질문항목을 작성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너무나 힘들어 눈물이 울컥 나는 날에도 무조건적으로 삼켰다. ‘변하는 건 없어.’라며 유예기간의 죄수처럼 살았다.

4. 나는 더 불안한 인간이 됐다.
억누른 감정은 폭발적인 힘을 가진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그만큼 나를 더 샅샅이 파괴했다. 나는 왜 그 때 나의 감정을 사치로 치부했을까돌이켜보면 그 시기가 가장 불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든 위로받아 마땅했다. 너무나 정형화된 제도 아래 진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오던 나인데 갑자기 다 컸다며 무한정의 자유 속에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때 왜 나는 내 자신을 비난했을까나는 대한민국에서 백수로 살아가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네 맘 안다. 그러니 맘껏 울라. 웃어도 괜찮다. 네 자신을 비난하지 말라.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그 시간을 유예기간처럼 살지 말라. 웃고 울고 행복해 해도 된다. 억누르지 말라. 그리고 일어나 지혜로운 이성을 택해야 한다내가 선택한 이성은 얼마나 부질없었나. 나는 내 감정을 비난하며 감정의 동요 없이 하루의 일과를 온전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 이성적이라 생각했다. 감정적인 것은 변하는 것도 없고 성과물도 없지만 이성적인 것은 결과물이 존재했다. 하지만 망망대해의 돛단배 같은 알 수 없는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울지 않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감정을 억눌러 만든 이성이 얼마나 갈 수 있을 것인가처칠은 말했다. “나로 말하자면 긍정주의자인데 다른 주의자가 돼봤자 별 쓸모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5. 나는 취준생인 당신이 이 기간을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불현 듯 때가 되면 내리는 눈처럼 터널에서 벗어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만 당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를. 그래서 이 시기를 판결을 기다리는 유예기간처럼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그냥 그 기간은 그저 자신의 사용 매뉴얼을 얻는 시간일 뿐이다. 되돌아보니 그렇게 생각이 든다. 취업준비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과정일 뿐이다. 새롭기에 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고 실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 과정일 뿐이다. 나와 나는 평생 같이 살아갈 것인데 이것은 다 나와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란 말이다. 그러니 괜찮다. 다 괜찮다. 다만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너무 사회를 탓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자신의 탓은 더더욱 하지 말라. 다 과정일 뿐이다안타까운 말이지만 취직을 하고 나서도 터널 같은 답답한 일들은 정말 많이 준비되어 있으며, (그것도 당신만을 위해) 취직한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 준비를 해야 할 가능성도 다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겁내지 말기를. 지도만 있다면 목적지를 찾는 것은 금방이다잊지 말라. 그저 지금은 나 사용서를 작성하는 기간일 뿐이라고

그러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사회책임전가의 흐름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할 것.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사회에서 열심히 자리를 잡아 내 의견이 영향력 있게 피력될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다. 우리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당신의 취준 기간을 응원한다. 꽃 같은 당신 나와 함께 걸어가자. 힘든 당신의 손을 잡고 싶은 내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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