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삶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돈, 시간, 노력 등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이룰 수 있는 ‘효율적’인 일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일은 종종 쓸데없는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여기, 보다 쓸모 있는 일을 하기를 추구하고 강요받는 사회에 작은 파동을 울리는 교수가 있다. 2015년 12월 29일 서울대학교 대나무 숲에 올라온 경제학부 노교수의 이야기이다. 유명한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라 시험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남아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동안 배운 모든 경제학 이론을 잊으라는 노교수의 말.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노교수는 학생들은 천천히 둘러보았다.
물론 경제학은 분명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결코 유일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을 때 지극히 가난했습니다. 그 때 대기업과 경제학 대학원을 동시에 합격했지요. 경제학 원리를 통해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나는 대기업을 선택했어야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구멍가게를 하셨고 저희 집은 가난한 편이었거든요.
대학 공부를 마친 것만도 감사해야 했죠. 석사라니요. 가당치도 않았죠. 하지만 저는 4년 동안 착실히 배운 경제학의 원리를 모두 무시하고, 그냥 대학원의 길을 택했습니다. 경제학이 궁금했고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그 결과, 비록 돈을 조금 덜 벌고, 큰 권력을 갖지는 못했지만 교수라는 자리를 얻어 여러분들 앞에서 이렇게 강의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행복하냐고요? 행복합니다. 백퍼센트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만, 그래도 나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눈빛 초롱초롱한 여러분께 가르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내 삶은 이 정도면 괜찮았습니다.
학점 관리, 동아리, 알바, 대외활동, 취업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학생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강의실을 채운 침묵. 학생들 앞에 선 노교수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어떤 여성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기회비용이 얼마나 크든 상관없이 그 여성을 선택하세요. 학점 따위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미치도록 소설이 쓰고 싶다면, 계획 조금 빗나가는 것은 그냥 넘기십시오.
그 시간에 꼭 쓰고 싶은 이야기를 완성시키세요. 여러분의 삶을 진정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완전히 ‘탈-경제학적’인 선택입니다. 우둔해지세요.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세요. 잠에 들다가도 떠올리면 괜스레 좋아지는 것, 그것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사람들에게 높은 학벌과 시험을 통해 검증된 영어 실력, 봉사활동 실적과 기획 능력 및 지도력 등 많은 사항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고스펙을 위해 기회비용*을 따지게 된다.
즉, 사람들이 자신의 여유 시간을 여행보다는 어학연수에, 좋아하는 일보다 잘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활동’의 관점에서 기회비용을 따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 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기회비용이 ‘인생’의 관점에서도 긍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된 기회들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갖는 기회, 그러한 기회의 가치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좋은 학교에 진학하여 대기업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벌거나, 사업이 잘 되거나 유명세를 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인정받는 것이 좋은 인생,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결과를 통해 그에 대한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과에만 얽매인 결과론적 인생은 사람들을 공허하게 만든다. ‘행복’이 결여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결과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은 결과론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제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기회비용을 따진다면 그 삶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알맹이 없이 ‘인생’이라는 형태만을 갖춘 삶은 진정한 삶이 될 수 없다. 1초, 1분, 1시간, 1일, 1달, 1년……. 삶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총체이며,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이미 상류에서 중류로, 중류에서 하류로 흘러내려간 강물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 ‘인생’이라는 매몰비용*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기에 지나간 시간을 후회 할 뿐,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기회비용에 연연하여 흘러가버리는 매몰비용에 신경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You Only Live Once, YOLO. 인생은 단 한 번이다. 여러 번의 인생을 산다고 한들, 우리는 지나간 전생을 기억할 수 없으며, 후생에 현재의 인생을 기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비되는 매몰비용 속에서 기회비용에 연연하며 경제적 선택을 하는 것보다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꿈을 꿔라. 그리고 인생을 즐겨라.
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행복한 사랑도 해 보고,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픈 이별도 겪어봐라. 정체 모를 무언가로 콱 막혀 속이 답답할 때에는 정처 없이 떠돌며 여행해 보기도 해라. 그리고 수많은 공상 속에서 길을 걷다 문득 영감이 떠오를 때는 글을 써라.
수십 년이 지나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봤을 때, ‘진정한 나의 길을 걸어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후회 없는, 자신에게 있어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라.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벗어나 진정한 꿈을 꾸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인생’이자 ‘행복’이다.
* 매몰비용이란 이미 사용되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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