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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프니까 병원가야지 왜 청춘이래?

오피니언

by 대학매거진 영글 2019. 9. 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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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국가이지만 농업국가로서 여건이 좋지 않았던 조선은 늘 국고가 넉넉지 못했기에 국립학교는 부실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국립학교보단 사립학교의 전통이 강했다. 국립학교에는 양반 아닌 일반평민이 정규학생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반들은 훌륭한 선생을 구해 따로 공부하는 편이였다. 그래도 양반자제들은 실제 출석은 하지 않았음에도 향교의 청금록(靑衿錄)에 등록은 했다. 과거시험을 치려면 학적(學籍)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는 양천제로 시작하여 양인들은 모두 과거응시는 가능하였으나 농민들은 과거 준비하기엔 생계가 급하였고 만일 과거에 급재 한다 하여도 관직등용을 할 땐 이조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혈연, 지연, 학연 등을 따지기에 좋은 관직을 농민이 얻기란 쉽지 않았다.

양반은 지주(地主)이기도 했다. 이들은 개간매매기증투탁상속 등의 방법으로 사유지를 넓혀갔다. 벼슬을 할 경우에는 녹봉(祿俸)과 과전(科田)을 받았다.

이들은 특권적으로 또는 비합법적으로 세금을 감면 받아 결국 국가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 양반은 비록 일은 하지 않았지만 농업에 종사해야 했고 상공업을 해서는 안 되었다. 도덕적 수양을 쌓아야 하는 양반들이 이윤추구(利潤追求)에 물들 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양반은 토지를 매매할 때는 노비의 이름으로 하거나 장사를 해도 노비를 내세워 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이성무


1. 옛날 관료들은 민요를 수집하러 다녔다.
옛날부터 나라의 민심을 살피기 위해 국가 관료들은 백성 사이에서 불리는 민요를 채집하러 다녔다고 합니다. 민요가 곧 민심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통해 민심을 읽으려 한 것이죠. 이러한 민요가 오늘날로 하면 신조어 정도가 되겠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중들의 의식은 어떻게든 표출이 되나 봅니다. , 다른 게 있다면 옛날에는 그 민요 수집하러 다닐 정도였다면 요즘은"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하면서 들리는 민심도 부정하는 정도가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바야흐로 헬조선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을 우린 맞이하고 있습니다.

2.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어른들은 왜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그렇게 비관적인 말을 하냐고들 한다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세계 5위의 수출대국이고 세계 7위의 군사 보유국이라지만 그래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다. 국내 총생산 대비 복지 예산비율은 10.4%OECD 국가 중 최하위이고(2014년 기준) 노인 빈곤 율은 48.6%인데, OECD 국가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노인 자살률은 기록적이기까지 합니다(2014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55.5명으로 OECD 평균의 두 배). 상위계층의 10%가 전체 부의 66%를 독점하고 있고 무엇보다 소득 기준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2.1%, 상위 10%44.1%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자산 기준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60%대로 소득 기준으로 따질 때보다 훨씬 커지게 됩니다. 이는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이미 축적된 부를 통해 얻는 수익의 불어나는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로, '돈이 돈을 번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도출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2013년 국세청의 상속세 자료를 분석한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의 연구기준)

3. 무엇이 우리 사회를 경직된 구조로 만드는가.
세계 경제대국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전광판 아래 누군가는 오늘도 한 끼를 걱정하며 굶고 있을 거란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입니다. 무한경쟁 사회이기에 잔여적 복지로 가장 빈곤한 시민에게 기본적 안정망을 제공하는 시스템이기에 어느 정도 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국가에서 계급이 존재했던 조선, 그것을 넘어선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이 나오는 상황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계급이란 것이 순환되지 않는 집단들의 서열이라고 생각했을 때, 무엇이 우리 사회를 순환이 되지 않는 경직된 구조로 만들었는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사실 너무나도 복잡한 문제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 문제가 아니란 말도 있듯, 이미 문제가 뭔지, 정확하고 명확하게 파악했으면 헬조선이란 말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무엇이 이 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들었는지를 알아보지 않으려 합니다.(혹시 이것을 기대하고 읽는 분들에게 미리 사과의 말 전합니다.) 대신 무엇이 이토록 이 사회를 굳어지게 했을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회로 굳어지게 한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알아볼 계획입니다.

4.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기는 능률이다.
이데올로기란 내부 결속 및 지배구조 안정화를 지향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늘 억압성을 띠고 있으며 둘째, 외부자의 입장에선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셋째, 내부자들에겐 이런 이데올로기가 당연한 상식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란 책에선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기는 능률, 능력이라고 제시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혹시 흑사병과 르네상스의 상관관계에 대해 아시는지요. 흑사병의 감염경로는 3가지였습니다. 쥐벼룩, 감염자의 혈액 그리고 공기를 통한 감염입니다. 공기를 통해 병균이 쉽게 침투했기에, 공기는 유럽 대륙 전역을 빠르게 감염 시킨 경로가 되었습니다. 흑사병 이후 150년 동안 인류 역사는 엄청난 발전이 있게 됩니다. 신대륙 발견과 인쇄술 발명,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했고 민주주의 혁명과 산업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혹시 흑사병이 이러한 발전을 이끌어 냈냐는 주장을 하고 싶냐고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흑사병으로 유럽 사회는 많은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여백이 주는 창조성 때문입니다.

5. 여백이 주는 창조성 
중세시대는 철저한 종교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이는 하나의 이념 아래 천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세계란 겁니다. 중세시대는 어쩌면 군대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피라미드 같이 정점을 찍는 계급조직이란 것으로 이 시대의 정점은 교황, 밑으로는 사제였죠. 이러한 세계에 흑사병이 들어와 끼친 영향은 바로 사제의 공백입니다. 죽어가는 자 옆에서 안식을 주던 사제들은 흑사병의 감염에 더욱 노출되었고 자연히 사망률도 다른 계급에 비해 높았습니다. 이러한 높은 사망률은 안식을 주어야 하는 사제의 수요가 증가함에도 공급이 뒤따르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공백 속에 예전이라면 턱없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사제들이 그 부족한 공급을 보충하게 되었고 굳어있던 중세시대의 시스템에 새로운 사상이 유입되게 됐다는 것입니다갑자기 흑사병이야기는 왜 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한국의 능력, 능률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이와 같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능력과 능률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에선 모순적인 이야기지만 창조력이 죽게 됩니다.

6. 획일적인 사회 우리는 어떻게 생존할까?
모바일 게임 쿠키런을 생각해 봅시다. 최고 점수를 만드는 것은 능력과 능률이지만 그것을 이루기위해선 게임의 깨알 요소 같은 것에 신경을 쓸 수 없습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더 장애물에 걸리지 않을지, 그 주요한 문제에만 몰두하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 좋은 점수를 획득할수록 다양한 컨텐츠를 즐기는 것이 아닌 오직 반복과 훈련이 주가 된다는 것입니다이런 능력과 능률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어떻게 생존하고 있을까요. 능력과 능률의 목표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사회 발전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기업사회라고 합니다. 기업에 소속되지 않으면 사회적 안정망 안에 들어 올 수 없단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청년들은 안정적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기업의 목표는 무엇일까요제가 배운 바로는 기업의 정의는 주주의 최대 이윤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배웠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기업의 목표는 주주의 이윤이고 그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선 지출을 줄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임금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요. 청년 비정규직이 64%가 되는 사회입니다. 자립하기 위해 청년들의 목표는 취업인데 기업의 목표는 주주이익의 극대화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의 입장에 서게 되며 또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완생하기 위해선 그들의 목표는 또다시, 직속 상사님께 승진하기 위해 잘 보이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능력과 능률은 창의성, 다양성이 아닌 오직 획일성을 따르게 됩니다

7. 정신분열증은 강력한 불안에서 생겨난다.
프로이트는 심리치료가 단순히 개인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 치료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정신이 아프게 되는 이유를 개인이 아닌 사회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자가 되는 원인이 인간은 사회가 그 문화적 이상에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 인간에게 부과한 억압의 정도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신경증자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불안은 나아가 우리의 실패를 만드는 트라우마가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의 개선도 필요하단 것입니다. 정신분열증은 강력한 불안에서 생겨난다고 합니다. 프로이트 학파의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엄마의 부재를 견딜 수 없는 어린아이가 죽음의 공포를 견딜 수 없을 때 정신분열증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멜라니는 어린아이는 망상-분열적 위치에서 우울적 위치로 옮겨지는 심리상태를 겪는다고 보았는데 이때 망상-분열적 위치에서 우울적 위치로 넘어가지 못하면 그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정신분열증을 초래한다고 보았습니다.

8. 불안이 주는 사회적 여파
망상
-분열적 위치란 아이가 엄마를 부분적 대상으로 인지하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젖을 주는 엄마와 젖을 주다 사라진 엄마를 동일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두 상황 속의 엄마를 동일시하지 못하기에 젖을 주다 엄마가 사라지면 다시 돌아올 것이란 것을 생각할 수 없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아이가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울적 위치는 이러한 파편적으로 느낀 엄마를 전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단계라고 보았는데 엄마가 젖을 주다 잠시 사라져도 언젠가 다시 올 것이란 신뢰감이 생긴 상태란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도움을 대상을 근시안적으로 인지하느냐 거시적으로 인지하느냐의 차이인데 이 차이는 상황의 안정감과 신뢰감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이러한 멜라니의 이론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가 더 심화되는 이유를 찾는 단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불안이 주는 사회적 여파 말입니다. 왜 청년들이 사회문제에 좌절하고 무기력하냐고 비판하지만 멜라니의 이론에 따르면 그 좌절의 크기만큼 우리 사회 속에 청년들은 엄마신뢰하지 못하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망상-분열적 위치에 있는 사회는 새끼 새들이 모여 있는 둥지와 같습니다. 어미가 밥을 하나 날아올 때 새들은 필사적으로 입을 벌리는데 둥지 안 새들은 자신의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먹지 못하면 다시는 못 먹게 될지도 몰라!’ 그 둥지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필사적이지 않으면, 내가 먹지 못하면 내가 여기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사회의 불안이 가져다주는 문제 또한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당장 여기서 이득을 보지 않으면 다음 기회가 없을 것이란 불안, 물이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그런 불안, 내가 이곳에서 실패하면 다신 일어날 수 없을 거란 불안. 사회의 안전망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서로의 이득을 챙기기 바쁘고 그럴수록 이득을 보지 못한 이들은 더욱더 불안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게 됩니다.

9. 탐관오리가 넘쳐나서 나라가 망하는 것보단, 나라가 망해가기에 탐관오리가 넘친다.
저는 이번 시간을 통해 헬조선이란 단어를 어떻게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왜 건국 이래 가장 풍족한 이 때 계급론이 대두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계급이 순환되지 않는 시스템이라면 우리 사회를 굳게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사회가 경직되는 이유가 결국 청년들의 목표가 기업에 취직하기 위함이지 자신의 꿈을 위함이 아니란 것이 문제이며, 또 기업은 능률과 효율을 추구하지만 그 목표가 사회의 발전이 아닌 내부의 운영을 위함이란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런 사회 속에서 불안은 거시적으로 사회와 미래를 내다볼 수 없고 그저 눈앞에 있는 이득이 생겼을 때 많이 챙겨야 하는 사회의 풍조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정말 주관적이고 이상적이지만 저는 문화의 힘을 믿습니다. 사회주류계층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보다 한층 더 높은 곳에 있는 문화를 가지는 것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하늘 문화가 땅의 문화를 이긴다 하듯,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지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하는 것이, 그들보다 더 거시적 시야를 가지는 것이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민주시민의식의 성숙이라고 볼 수 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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